물류센터 알바는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최저시급이라도 일한 그다음 날 임금을 입금받는 것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 틀림없다.
근로계약서 작성 후 선반에 물건을 쌓는 일을 했다. 옷이나 신발이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팔다리와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었다.
팔레트에 쌓인 물건 박스를 가져다가 선반에 적힌 번호에 따라 쌓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의 선반번호에는 2~3개의 박스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인데 7개의 박스가 같은 번호로 되어 있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관리자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관리자는 조금 후에 답했는데, 선반에 적힌 번호마다 각기 해당되는 물건박스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박스를 뜯어 그 내용물을 어떻게든 적치하거나 그래도 안되면 '공간부족'이라고 박스에 표시한 후 반품하라고 했다.
2시간가량 그렇게 일을 처리했는데 관리자가 정정지시를 했다.
사실은 자기가 잘못 알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선반번호에 다 넣을 수 없는 박스는 그 옆 번호 빈 곳에 넣어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박스를 뜯어 적치하거나 공간부족이라고 쓰고 반품하라는 지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관리자는 업무지시를 정정하면서 왜 죄송하다고 했을까?
어차피 알바 근로자는 업무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계약시간만 지나면 해당되는 임금을 받는다.
A하라고 했다가 정정하여 B하라고 한들 근로자 입장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근로자는 관리자의 업무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그 임금만 받으면 된다. 그래서 A하라고 했다가 다시 B하라고 한다고 해서 죄송할 일은 아니다. 사실 죄송하다면 그 관리자는 근로자가 아니라 소속회사 대표자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는 왜 근로자에게 죄송하다고 했나?
자신이 했던 일을 다시 고치는 것은 감정적으로 불편하다.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주어진 일을 다 하고나면 뭔가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어찌 되었든 자기가 한 일을 다시 다른 형식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금 전에 한 일이 헛일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져 시키는 일만 주어진 시간 내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리자가 말하는 죄송하다는 것이 뭔지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그 관리자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었다.
이미 자신이 한 일을 다시 고치는 건 왜 유쾌하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애착? 또는 자기의 노력이 들어간 것에 대해 좋게 보려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와 비슷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젊었을 때, 10명을 데리고 경사진 곳에 잔디 심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심었던 잔디를 걷어내고 진달래나무를 심어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제 작업했던 10명에게 그 일을 다시 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게 생각되었다.
차라리 다른 팀에게 그 일을 시키지 왜 내 팀에게 그 일을 다시 하라는 것인지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일을 다른 팀에게 줬다면 아무도 감정적으로 틀어지지 않을 것인데 어제 작업했던 나에게 뜯어 고치라고 했나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제 했던 팀이니까 그 일을 잘 알고 환경에 익숙하니까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
분명히 그 일에 익숙하기는 하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 그렇게 번복하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했던 많은 일들이 그대로 그렇게 종결되는 일은 많지 않는 것 같다.
지난해 마당에 보도블럭을 깔았다가 올해에는 그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시멘트 콘크리트를 치는 일도 있다.
지난 계절에 놓았던 가구를 올 봄에는 다른 방향으로 옮기는 일도 있다.
상황에 따라, 생각에 따라 많은 일들이 고쳐진다.
이런 것에 불편해 할 일이 아니다.
내가 한 일이나 행동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내 감정은 내가 관리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