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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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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낯설게 보기:죽음의 통치성과 은폐된 욕구

Defamiliarizing Self-Determination on Death: Governance of Death and Concealed Desire

최혜지

 

 

 

 

1. 죽음이 의학적 실패로 간주됨에 따라 첨단 기술을 동원한 생명 연장은 의학의 승리로 환영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러운 죽음은 거부되고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 확대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생의 마지막 기간을 보내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다. 존엄한 죽음, 즉 존엄사는 2009년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에 관한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특히 이 판결은 존엄사가 대한민국헌법 제10조1) 에 기초한다고 밝혀 헌법이 존엄한 죽음에 대한 법적 근거임을 공식화했다(나주영, 박종태, 2022).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1

 

 

2. 자기결정권이란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에 관한 주요 사항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연적 권리를 말하고,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란 죽음의 방식, 죽음의 시기에 관한 죽음관을 형성하고 실행할 권리를 의미한다.

 

이때 죽음의 방식은 자기결정 여부, 작위의 여부에 따라 여러 개의 이름으로 명명된다. 개인의 동의가 확인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안락사는 자발적 안락사, 개인의 동의 여부를 직접적으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는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또한 작위 행위의 유무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뉘며, 적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야기하려는 행위의 직접적 결과 또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행위의 간접적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임에 반해 소극적 안락사는 삶을 유지시키는 치료를 거두거나 치료를 하지 않은 것에 의해 사망에 이르도록 놓아두는 것이다(김분선, 2020).

 

 

3. 연명의료결정법은 자기결정권이 인정되는 대상을 호스피스·완화의료 환자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제한한다. 이때 호스피스·완화의료 환자는 암, 후천성면 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그 외에 13개 질환으로 진단 받은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특정된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모든 시민의 헌법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의 권리를 갖는 대상은 실정법상 암 등 법이 정한 17개 질환의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 축소된다.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진단받은 환자를 의미하고,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 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자이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한된 범위, 조건, 대상에게만 부여되고, 죽음에 대한 나의 선택은 법적으로 제한된 채 오히려 나의 죽음은 타인의 결정에 맡겨진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의 헌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시민은 죽음에 대한 주체로서 권리를 유보당한 채 정치 권력, 행정 권력, 생명 권력의 이해관계가 체화된 연명의료결정법의 각본을 실행하는 자로 주변화된다.

 

죽음을 통치하는 자는 누구인가? 죽음에 대한 결정 권한은 대통령, 보건복지부장관, 의사에게 집중되고, 존엄한 죽음을 향한 시민 권리의 실재는 이들 지배 권력에 의해 구조화된다. 

 

 

4. 예를 들면, 아프지 않을 권리를 구현하는 건강보장 제도는 건강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욕구와 국가 권력의 거래에 의한 정치적 산물이다. 국가는 질병 예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감소를 위해 건강검진의 의무화 등 건강보장 제도를 통치 기제로 삼는다. 이때 건강보장의 강화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자본은 이익을 수확한다. 이와 같이 자본과 지배 권력은 생명 관리의 정치를 통해 상호 이익을 보호하는 지배 구조를 생산하고 강화한다.

 

 

5. 죽음의 자기결정권, 존엄한 죽음 담론의 부상 배경에도 자유주의적 통치 기술과 자본 사이의 결탁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이는 자본과 권력이 공모해 공리라는 명분하에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정치적 도구와 통치 전략으로 악용하는 경우 ‘플랜 75’)의 영화적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든, 허무한 삶으로부터 해방을 위한 것이든 죽음의 자기결정에 대한 관점이 사회적 규범에 종속 되어 왔다는 시대적 경험은 영화적 상상과 경고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예컨대 신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이 구성된 17세기 이전까지 생명은 신에게 속한 것이며, 백성의 숫자는 국왕의 권력을 상징했다. 따라서 죽음은 신만이 관장할 수 있고 개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며, 공동의 선을 해치는 것으로 비판되었다. 반면 신의 권위가 추락하고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가 날개를 단 계몽주의, 자유주의 시대에는 죽음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이 지지되었다. 이와 같이 시대 정신에 따라 죽음에 대한 권한이 누구에게 속해있고, 무엇이 바람직한 죽음인가에 관한 규범은 변화한다.

따라서 ‘플랜 75’처럼 생산성을 잃은 개인은 공리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생각을 규범화하고, 지배 권력이 규범을 통치에 활용하면 죽음의 자기결정권은 악의적 권력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일본 영화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는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6. 죽음은 삶의 과정이기에 죽음의 존엄성은 삶의 존엄성과 다르지 않다는 죽음의 역설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삶 위에 가능하고 동시에 존엄한 삶을 완성하는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죽음의 경계에 선 개인에게 삶의 존엄은 닿을 수 없고, 고통은 거리를 좁혀 온다. 10만 명 중 40명 이상의 노인이 비참한 삶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현실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은 존엄한 죽음과 손잡기보다 빈곤, 소외, 고통에 떠밀린 비의도적 결말이기 쉽다. 존엄을 유지할 수 없는 삶에서 죽음은 인간의 존엄함을 지켜낼 마지막 선택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7. 고통 없고, 타인에게 부담되지 않는 사망을 존엄한 죽음으로 정의하는 한국인은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이유로 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 이는 가족의 재정적 부담과 심리적 고통을 외면한 채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자기결정으로 오롯이 담아내기 어려우며,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은 삶의 여건에 종속되어 있음을 재확인한다(홍지형, 2020).

 

 

8. 죽음에 대한 선택, 죽음의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삶을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마련된 상태에서 시민의 권리로써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소득, 건강, 돌봄의 사회권이 미성숙한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버거운 삶을 서둘러 종결하는 비극을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방임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시민권의 이름으로 죽음을 통치한 권력에 부과된, 존엄하지 못한 죽음, 존엄을 상실한 삶에 대한 공적 책임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오류를 범한다.

 

 

9. 존엄한 죽음 담론의 정곡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이 존엄을 상실한 삶의 탈구가 되지 않도록 생의 마지막 존엄을 위해 존엄한 삶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에 있다. 존엄한 삶의 토대 위에서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죽음의 실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