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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성경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정확한 가족관계가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의 견해와 성경내용을 기초로 가족관계를 정리해볼 수는 있겠지요.
우리(대한민국) 문화에서는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족관계도를 그려볼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관련정보를 유추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행적과 말씀 등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가족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The Son of God)'이 공개한 전혀 예상치 못한 예수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귀티나게 잘생긴 얼굴이 아닌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의 서민적인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영국의 법인류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재현한 예수는 키 153㎝, 몸무게 50㎏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의 남성이었다. 신약성서 기록을 참고하고 1세기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의 셈족(유대인) 유골과 고대 시리아 프레스코화를 컴퓨터 이미지로 합성,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BBC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예수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때 역사적 개연성이 높다. 성서의 이사야 53장에도 그의 용모에 대해, ‘아름다운 모습이나 위엄있는 풍채가 없어서 흠모할만한 것이 없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멋진 외모를 가졌든 작은 키에 볼품이 없었든 간에, 그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성인이자 스승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은가.
(한국일보,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명화속 예수의 진짜 얼굴은?. 2020.11.30.)
1. 예수님의 (행정적) 부모는 요셉과 마리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셉은 신학적으로 친부가 아닌 양부로 이해되고 있지요.
성경에서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에 대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출신: 요셉은 다윗의 후손으로, 유대 베들레헴 출신입니다(마태복음 1:16, 20).
2. 직업: 목수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에서는 석공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마태복음 13:55).
3. 성품: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됩니다(마태복음 1:19).
4. 마리아와의 관계: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으나,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알고 조용히 파혼하려 했습니다(마태복음 1:18-19).
5. 천사의 방문: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았습니다(마태복음 1:20-21).
6. 예수의 양부: 예수의 법적 아버지로서 예수를 키웠습니다(누가복음 2:41-52).
7. 예수 탄생 시 역할: 베들레헴으로 가서 인구조사에 응했고, 예수의 탄생 장소를 마련했습니다(누가복음 2:1-7).
8. 예수의 어린 시절: 이집트로 피난 갔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착했습니다(마태복음 2:13-23).
9. 마지막 언급: 예수가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일이 요셉에 대한 마지막 언급입니다(누가복음 2:41-52). 요셉은 예수의 양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성경에는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사항입니다.
마리아의 일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출생과 배경: - 기원전 18년경 나사렛 출생 - 유다 지파, 다윗 가문 출신 - 히브리어 이름은 '미리암'으로 '높여진 자'라는 뜻
2. 예수 탄생 전: -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음 - 요셉과 약혼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 - 요셉과 결혼
3.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 - 베들레헴에서 예수 출산 (BC 4년경) - 목자들과 동방박사의 방문 받음 - 헤롯의 유아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 - 나사렛으로 귀환하여 정착
4. 예수의 공생애 동안: - 예수의 첫 기적(가나의 혼인잔치)에 함께 참석 - 때로는 예수를 찾아가 만남
5.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그 이후: -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고통을 지켜봄 - 예수가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함 -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
6. 마지막: - 41년경 예루살렘 또는 에페소에서 선종 마리아의 삶은 예수의 어머니로서 많은 고난과 영광을 겪었으며,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의 형제자매는 몇 명이었을까?
성경에 따르면 예수의 형제자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형제 4명: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마태복음 13:55, 마가복음 6:3에 언급)
2. 자매들: 정확한 수는 언급되지 않지만, 복수형으로 표현되어 있어 최소 2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마태복음 13:56) 따라서 예수의 친 형제자매는 최소 6명 (형제 4명 + 자매 최소 2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주로 개신교, 특히 장로교 등에서 받아들여지는 견해입니다.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 등에서는 이들을 예수의 친형제자매가 아닌 다른 관계(예: 사촌, 의붓형제 등)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예수의 형제자매들이 예수를 대한 태도는 시간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1. 예수의 공생애 동안: - 예수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5에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때로는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3:21에서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잡으러 나섰으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이러라"라고 언급됩니다.
2. 예수의 사후: - 태도가 크게 변화하여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 교회 내에서의 역할: - 바울의 서신에 따르면, 예수의 형제들 중 일부는 결혼을 했고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고린도전서 9:5). -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사도행전 15장).
4. 후기의 영향: - 예수의 친족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의 쇠퇴와 함께 그들의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형제자매들은 처음에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후에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초기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예수님은 사후 마리아의 부양문제를 왜 친형제자매가 아닌,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였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한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영적 가족의 중요성: 예수님은 혈연관계보다 영적 관계를 더 중요시했습니다. 마태복음 12:50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제자 요한의 특별한 위치: 요한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렸으며, 예수님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3. 형제들의 불신: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그의 형제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7:5). 비록 나중에 그들의 태도가 바뀌었지만, 십자가 사건 당시에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 실제적인 필요: 요한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마리아를 돌보기에 더 적합했을 수 있습니다.
5. 영적 보호: 마리아를 신실한 제자의 보호 아래 두어 그녀의 영적 생활을 지원하고자 했을 수 있습니다.
6. 상징적 의미: 이는 새로운 영적 가족, 즉 교회의 형성을 상징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이 결정은 단순히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더 깊은 영적, 실제적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형성과 상호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과 역사적 해석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요한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1. 삯군 고용: 마가복음 1:20에 따르면, 요한의 가정은 삯군을 두고 어업을 경영할 만큼 부유했습니다.
2. 사회적 지위: 요한은 대제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요한복음 18:15-16). 이는 그의 가정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3. 예수의 수제자: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수제자로 언급되며, 특별히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로 5회나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4. 대조: 이는 가난했던 예수와는 대조적입니다. 예수는 매우 가난했고,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이 집 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 출신이었으며, 이는 그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상당한 물질적 안정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5. 부모 부양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 고르반 제도란?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 4-5절에서 유대인들이 전통을 빌미로 부모 공경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고르반'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주장하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관행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전통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본질을 중요시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여줍니다.
고르반 제도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서약하여 부모 부양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한 관행입니다. '고르반'은 히브리어로 '예물'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드린다고 선언된 재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제도는 본래 경건한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악용하여 부모 공경의 의무를 피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6. 예수님이 선호했던 식단과 의복 스타일은?
성경에는 예수님의 특정 음식 선호도나 혐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식습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을 알 수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식단: - 빵과 생선이 자주 언급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이 두 가지 음식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 당시 유대인의 일반적인 식단을 따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는 과일, 채소, 콩류, 곡물 등이 포함됩니다.
2. 코셔 음식: - 유대인으로서 코셔 음식법을 지켰을 것입니다. 이는 돼지고기 등 특정 음식을 피했음을 의미합니다.
3. 포도주: -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사용하셨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4. 유월절 음식: -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셨으므로, 양고기와 쓴 나물 등 전통적인 유월절 음식을 드셨을 것입니다.
5. 음식에 대한 태도: - 예수님은 음식 자체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복음 15: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특정 음식을 선호하거나 혐오했다기보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유대인 식단을 따르면서도 음식 자체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중요시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가 포도주를 얼마나 자주 또는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포도주 음용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1. 일반적인 음료: 당시 포도주는 물을 정화하는 용도로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도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포도주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 가나의 혼인잔치: 예수의 첫 번째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포도주 음용을 금기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3. 최후의 만찬: 예수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포도주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성찬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4. 비난: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11:19). 이는 그가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5. 절제 강조: 예수는 술 취함을 경계했으며, 절제를 강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는 포도주를 마셨지만 그 양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는 당시의 문화적 관습을 따르면서도 절제를 강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의 의복 스타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기본 구성
- 속옷(튜닉 또는 키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소매 또는 반소매의 옷
- 겉옷: 속옷 위에 입는 외투
- 허리띠 - 머리를 감싸는 터번이나 천 - 신발
2. 속옷(튜닉): - 두 장의 직사각형 천을 어깨와 양쪽 옆 솔기를 바느질하여 만듦 - 목둘레선을 일자로 트고 소매를 만들어 머리 위에서부터 뒤집어써서 입음 - 예수의 속옷은 "잇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특별한 것이었음 (요한복음 19:23)
3. 재질: - 겉옷은 주로 양모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됨
4. 색상: -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의 의복 색상을 따랐을 것으로 추정
5. 스타일: - 당시 유대인의 일반적인 의복 스타일을 따랐을 것으로 보임 - 화려하거나 특별한 장식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
6. 상징성: - 예수의 이음새 없는 속옷은 그의 가르침의 통일성과 순수성을 상징한다고 해석됨 예수의 의복은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의 의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화려하거나 특별한 것보다는 평범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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